“라노야, 일로 쫌 와봐.” 설 연휴를 마치고 출근하자 A 선배가 호출합니다. 선배가 보여준 건 책상 위를 수북하게 덮은 플라스틱 쓰레기. 배달음식 용기와 일회용 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4인 가족인 A 선배는 “연휴 때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를 갖고 왔다. 한 집에서 이 정돈데 부산 전체면 얼마나 많을까”라고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국제신문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RANO)입니다. 라노네 집에서도 만만찮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옵니다. 지난해 이맘때는 “부산 강서구 생곡동 자원재활용센터가 한 달에 처리할 수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양은 1600t인데 매달 평균 2000t가량의 물량이 몰리고 있다. 자원재활용센터에 미처 처리되지 못한 플라스틱이 산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었죠. 일부 지역에 국한된 문제는 아닙니다. ‘청정’의 대명사로 꼽히는 스위스 알프스에서도 나노 플라스틱(1㎛ 미만 플라스틱 입자)을 머금은 눈이 내린다는 보도가 최근 나왔습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부산에선 ‘부산 E컵’이라는 다회용 컵을 카페에 제공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려는 시도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그린업’이 부산시 지원을 받아 전개 중인데요. 재생 가능한 친환경 소재 ‘PP(폴리프로필렌)’로 제작됐어요. 지난해 10월 부산시청 인근 카페를 시작으로 현재 해운대·영도·동래·동구까지 47곳의 카페가 부산 E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라노가 동래구청에 있는 카페 ‘얼쑤벅스’를 방문해 직접 사용해봤습니다. 우선 ‘E컵’ 앱을 깔아 보증금 2000원을 충전. 음료를 주문하며 “E컵을 이용하겠다”고 하자 곧 따뜻한 커피 한 잔이 E컵에 담겨 나왔습니다. 반납도 편리했어요. 카페 앞에 있는 회수함에 사용한 컵을 집어넣고 QR 코드를 하면 끝. 반납이 되면 보증금도 곧장 다시 들어왔습니다. 매일 E컵을 이용한다는 직장인 정우정(31) 씨는 “텀블러는 매일 세척해야 해 번거로웠는데 E컵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일회용 컵과 달리 뜨거운 음료를 먹는다고 컵이 물러지지도 않는다”며 만족해했어요.
수거된 컵은 초음파 세척·UV 살균 작업 등 네 단계를 거쳐 다시 매장으로 보내집니다. E컵은 200회 사용되면 수명을 다해요. 이후에는 자동차 부품 등으로 재활용됩니다. 지난 4일까지 대여된 부산 E컵은 약 6000개. 그린업 오민경 대표는 “대신 일회용 컵(개당 10g)을 사용했다고 가정하면 쓰레기 60㎏과 탄소 240㎏을 줄이는 효과를 낳은 셈이다. 이는 30년생 소나무 36그루를 심었을 때의 환경개선 효과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린업은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와 중구 대청동 오피스거리 등 대여·반납이 쉬운 지역의 카페를 집중 공략 중입니다. 프랜차이즈인 어벤더치커피 본사 ‘카페폴인’과는 지난해 12월 환경보호를 위한 업무 제휴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오는 4월부터 코로나19로 한시 허용했던 카페 내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은 다시 금지됩니다. 6월부터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등을 대상으로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시행해요. 앞으로 일회용 컵을 사용하려면 보증금 300원을 추가로 내야 합니다. E컵과 유사한 시도가 대한민국 전역으로 확산돼 플라스틱 사용량 감소라는 결실을 맺길 기원하겠습니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220207.99099000947